
영화줄거리
시한부 선고를 받고 서울 변두리에서 '초원사진관'을 운영하며 담담히 죽음을 준비하던 정원(한석규). 평조차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의 무료한 일상에, 구청 주차단속원인 다림(심은하)이 나타납니다. 다림은 단속 사진 인화를 위해 매일 사진관을 찾게 되고, 정원은 생기발랄하고 풋풋한 다림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고, 놀이공원에 가고,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며 조용히 서로의 일상에 스며듭니다. 다림은 정원에게 설렘을 느끼고, 정원 역시 그녀를 향한 감정이 커져가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기에 끝내 좋아한다는 고백을 가슴에 묻어둡니다.
어느 날, 정원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사진관 문이 닫힙니다. 이 사정을 알 리 없는 다림은 며칠 동안 굳게 닫힌 사진관 앞을 서성이며 기다립니다. 편지를 써서 문틈에 넣어보기도 하고, 원망 섞인 마음에 사진관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깨뜨리기도 하지만, 결국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면서 두 사람은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됩니다.
얼마 후, 잠시 퇴원해 신변을 정리하던 정원은 깨진 유리창이 갈아 끼워진 사진관 안에서 다림이 남긴 편지를 읽고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그리고 홀로 남겨질 아버지(신구)를 위해 비디오 리모컨 사용법을 공책에 적어두고,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촬영한 뒤 세상을 떠납니다.
시간이 흘러 눈 내리는 겨울(크리스마스 즈음), 다시 초원사진관 앞을 찾아온 다림. 그녀는 사진관 쇼윈도에 액자로 예쁘게 걸려 있는 자신의 활짝 웃는 사진을 발견합니다. 정원이 자신을 얼마나 따뜻하게 기억했는지 깨달은 다림은, 슬픔 대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돌립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죽음을 앞둔 남자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고백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납니다.
등장인물요약
유정원 (한석규 분)
"초원사진관을 운영하는, 죽음을 앞둔 30대 중반의 사진사"
아버지가 물려준 변두리의 작은 사진관을 운영 중이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겉으로는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갑니다. 동네 아이들의 엉뚱한 사진을 찍어주고, 이웃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며 주변을 정리하던 중, 맑고 생기 넘치는 다림을 만나며 삶의 마지막 설렘을 느끼게 됩니다.
김다림 (심은하 분)
"구청 소속의 20대 초반 주차단속원"
매일 뙤약볕 아래에서 주차 단속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만, 싱그럽고 발랄함을 잃지 않는 사회초년생입니다. 단속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매일 초원사진관을 드나들면서, 늘 친절하고 편안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정원에게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원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서운함과 원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사진)을 통해 그가 가졌던 진심을 깨닫고 한층 성장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정원의 아버지 (신구 분)
은퇴 후 정원과 함께 살고 있는 전직 사진사입니다. 아들의 병을 알고 있지만, 아들 앞에서는 애써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슬픔을 삼킵니다. 정원이 비디오 리모컨 조작법을 알려줄 때 잘 따라 하지 못해 정원의 속을 태우는 장면은, 평범해서 더 가슴 아픈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철구 (이한위 분)
정원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절친한 친구입니다. 정원의 시한부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평소처럼 투덜거리며 장난을 치다가도 술자리에서 정원의 병을 생각하며 서럽게 오열하는 등 진한 우정을 보여줍니다.
지원 (전미선 분)
정원의 옛 첫사랑입니다. 이미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지만, 오랜만에 동네로 돌아와 정원의 사진관을 찾습니다. 정원의 마음속에 한때 깊은 흔적으로 남아있던 과거의 추억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영화총평
개봉 당시 평론가들은 눈물 짜내기식 신파가 주를 이루던 기존 한국 신파극의 틀을 깨부수었다는 점에서 극찬을 보냈습니다.
주인공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영화는 오열하거나, 절규하거나, 억지로 눈물을 유도하는 극적인 장치를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는 장면이나 묵묵히 일상을 정리하는 모습을 통해 슬픔을 절제할 때 오는 더 큰 먹먹함을 증명해 냈습니다.
일상적인 공기와 인물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포착해 내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은 평단으로부터 한국 멜로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석규와 심은하 두 배우의 연기는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계의 '가장 아름다운 앙상블'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와 미소로 죽음을 앞둔 남자의 초연함과 다림을 향한 풋풋한 설렘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직접 부른 동명의 OST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의 여운을 더했습니다.
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그녀의 가장 맑고 싱그러운 매력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20대 초반 사회초년생의 풋풋함과 투정, 설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청룡영화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1998년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가 시작되던 시기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감성멜로 영화로 최고임을 증명
한 걸작으로 우리들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